인간은 기본적으로 소통을 통해 자기 상처를 치유한다고 합니다. 상대가 절대적 존재이든 바로 자기 옆의 가족이나 친구이든 외부로 통하는 언어의 목소리를 닫고 자기 안에 갇히게 되면 마음이 아프고 상처는 곪게 되겠지요. 어릴 때 받은 상처들은 대부분 마음 깊은 곳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고 합니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그 상처가 어른이 된 후에도 자신을 옭아매고 주위에 고슴도치의 가시를 세웁니다. 스스로 고립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아프지만 자신은 아픈 것을 잘 모릅니다. 가족과 이웃이 무너진 공간, 경쟁이라는 사회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상처가 치유되기는 커녕 오히려 깊어갑니다.
아프다 얘기하면 사람이 좀 이상해졌다느니, 어른이 그 정도도 못 견디느냐, 입이 가볍다느니 수근거립니다. 나약한 사람, 문제 있는 사람 취급하며 입을 댑니다. 한국 사회가 특히 그러하죠. 우리는 다시 상처 받을까 혹여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찍힐까봐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에 급급합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이란 사실 자신들의 상처 또한 드러날까봐 방어막을 치는 것이 아닐까요? 상대의 결점을 강조함으로서 자신의 결점을 숨기려는 본능적 행동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독일엔 '클라인 가르텐'이라는 가족농원 제도가 있답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조그만 오두막과 텃밭을 만들고 가꾸는거죠. 그곳에서 가족과 혹은 자신과 대화합니다. 클라인 가르텐 하나가 열 개의 병실을 대치한다고 얘기합니다. 이곳이, 블로그를 포함한 소셜이란 공간이 또 하나의 '클라인 가르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통함으로서, 자신의 아픔을 일부 드러냄으로서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마음이 가벼워진다면 그것 또한 치유가 아닐까 하는. 여전히 솔직해지기 힘들지만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의 위안을 안고 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또한 소통과 치유, 그 또 하나의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는 거지요.
누군가는 꾸미지만 누군가는 솔직해집니다. 적당히 두 가지 면이 양립합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거짓말하고 속이지만 않는다면 어쨌든 표현하고 소통은 하니까요. 오히려 침묵 뒤에 숨어서 사람과 가치를 재단하는 것이 더 거짓에 가깝지 않을까요? 적어도 자기가 자신을 속이지 않는 한 이곳이 아직은 기댈만합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테니까요. 하지만 때론 이 사실이 슬프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