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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즐거웠나요

번역서를 보다 머리가 아플 때

시각마케팅으로통하라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디자인/색채 > 디자인 > 시각디자인
지은이 우지 토모코 (비즈앤비즈,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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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시각 마케팅으로 통하라'는 디자인 관련 일본 번역서를 읽으며 전문서적의 번역 문제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특정 전문영역을 다루는 외서를 번역하는 경우 변역자의 관련 지식수준이 어느정도 요구되기 때문에 전문가나 동종업종 종사자가 번역자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책 속의 전문 지식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 지식과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통찰을 통해 단순 직역이 아닌 우리 문화에 녹아든 언어로 재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번역자에게 요구된다. 하지만 정말 개발새발 번역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을 만큼 성의 없어보이는 번역서들을 보노라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번역자 개인의 보편적인 소통 능력의 부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작부터 이런식이다. 저자 소개의 글 중.
'비주얼 디렉터로 시각 디자인 전략을 구사하며 퍼포먼스의 높은 디자인 퀄리티로 정평이 나있다'.
퍼포먼스의 높은 디자인 퀄리티? 이게 무슨 말?? 콩글리쉬의 경연장에 온듯하다. 실무에서 습관적으로 쓴다고 번역서에서까지 이러면 안되는거다.

어떤 문장은 또 이렇다.
'간혹 참신하면서도 충실한 것으로 젊게 보여서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크한 디자인으로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해오는 경우가 있다.'
이 문장을 읽고 '혹시 저자의 원고 내용을 번역자가 원래 의미를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직역 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저런 표현을 일상에서 쓰고 있고 이것을 직역이라 애써 두둔하려해도 무언가 불편하지않은가? 이 난해하지도 않으면서 비틀리게 꼬인 문장을 다시 읽게 되고 머리가 아파온다.
이 책 대부분의 번역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160페이지 분량의 얇은 책 한 권이 두꺼운 소설책 한 권보다 더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가격도 15000원이나 한다!)

전문가나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자신이 종사하는 영역에 대한 해박한 전문지식만은 아니다. 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기본적인 언어 소양, 표현능력이다. 전달과 설득을 책임지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초등학교 때 부터 배운다. 쓰고 말하고 표현하고 전달하는 능력을 가지기 위해 13년동안 국어를 배우고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주입식교육의 수혜자가 그렇듯 자기의사의 표현과 설득능력보단 암기능력을 중심으로 배워온 우리는 언어마저 생각하지 않고 소비한다. 되새김질이 없다. 상대에게 귀기울이는 것을 곤혹스러워한다. 소통하기보단 전달할 뿐이다. 전달의 책임은 오로지 상대에게 전가된다. 번역서든 달변가든 일방통행은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