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처음부터 ‘빙시’가 아니었을테죠. 청춘의 시간이 아까운 숱한 열혈의 밤을 지새웠을 테고 막힌 가슴 주체 못해 바다로 산으로 뛰어들고 오르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그를 잡고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곧 아이도 가졌습니다. 아내는 조금 살이 쪘고 곧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 초등학교를 들어갔고 아내는 조금 더 살이 쪘습니다.
어느날,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그 가족, 주차 때문인지 아빠는 그 가족의 무리에서 뒤쳐졌고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던 아내가 그를 재촉합니다. 넓은 엘리베이터는 2대, 기다렸다 다음 번에 오르거나 먼저 올라가도 무방한 상황. 길지 않던 기다림. 그순간 조급한 듯 짜증섞인 표정의 그 아내가 달려오는 남편을 향해 내뱉습니다.
‘저 빙시!’
그 남자의 두 아이가 듣고, 나도 듣고 나의 아내도 들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똑똑히 들리도록 그 사람의 아내가 남편에게 내 뱉은 말, ‘빙시’
늘 듣던 얘기인지 아이들도 그러려니 하는 듯한 얼굴입니다. 오히려 상관없던 우리가 갑자기 민망해져 서로 얼굴을 쳐다봅니다. 남편이 뛰어들어 옵니다. 순하게 생긴 얼굴, 멋부리지 않은 후즐근한 옷차림의 젊은 아빠였습니다. 아직은 그 나이에 어울려야 할 당당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월에 벌써 지친 중년같은 위축감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괜시리 슬픈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가족 안에서 저 아빠는 얼마나 많은 ‘빙시’라는 얘기를 그의 아내로부터 들었을까. 저 아이들도 저 말을 계속 들으며 자랐겠지.
바람이 매섭던 추운 어느 겨울, 그 ‘빙시아빠’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마음 한구석에 담긴 그 쓸쓸한 풍경이 떠나지 않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