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공간의 크기로 봤을 때 넓은 공간에서 좁은 공간으로의 이동. 하지만 생활의 영역이 작아지자 불필요한 짐들이 비로서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필요한 것을 가짐으로부터 오는 불편함. 쓰지도 않으면서 버리지 못해 쌓아 놓기만 했던 물건들이 비로서 일어나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자기 존재의 불필요함을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열망하고 필요하지 않음에도 소유한다. 버리지 못해 그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시간이 쌓이듯 그것이 반복되어 습관이 된다. 그 사람이 사는 집엔 그 사람의 사는 습관이 보이고 그것은 곧 그 삶의 본질을 드러낸다. 집이라는 공간은 어쩌면 그곳에 사는 사람 그 자체이기도 하다.
나사 하나를 조이지 않아 싱크대 문이 덜렁거린다. 꼬마 전구를 갈지 않아 전등이 죽어있다. 집안 곳곳엔 검은 곰팡이가 이웃한다. 그저 살았던 흔적.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집을 통해 꿈을 꿀 수 없었나보다. 미래를 그리기 벅찼나 보다. 따뜻한 손길이 머물지않은 공간은 설사 그 집이 자신의 소유라 하더라도 타인의 공간일 뿐이다. 사람이 머물어 정착하는 곳은, 좁든 넓든 주인이든 세든 집이든 그곳은 자기만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무릇 사람의 온기가 배어있어야 한다. 그래서 집을 보금자리라 하지 않는가. 어수선한 짐들에 둘러쌓여 나를 바라 본다. 내가 살아왔던 분명한 증거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 이것들 앞에서 나는 어떤 변명도 꺼낼 수가 없다. ‘버리자’ ‘이젠 정말 버리자’ 다짐한다. 쓰지 않을 물건들은 아예 정리를 안하기로 한다. 이 물건이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나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것들에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최근 2년동안 한번이라도 꺼내어 본 적이 있었는지. ‘아니오’라는 답을 들은 녀석들은 이제 가차없이 내 영역에서 추방될 것이다.
얼마전 내 가치관에 끊임없이 자양분을 제공했던 한 사람이 운명을 달리했다. 그는 삶이 스위치와 같다고 했다. 켰다 끄면 바로 삶도 그렇게 된다고.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그는 자신에게 질문을 했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라면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일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인가라고.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자신이 가는 길을 멈추고 자신의 삶을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한 때 인연 을 맺었던 친구가 암으로 어제 세상을 떠났다. 젊은 나이. 예고없이 불쑥 찾아오는 죽음들. 죽음을 갑자기 마주하게 되면 자기 삶의 본질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불필요한 것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본질만 보인다고 한다. 아마 그것들이 삶의 가장 소중한 것들일 것이다. 죽음이 삶의 완성이라 하는데 우린 죽음을 두려워한다. 미완성으로 영원한 마침표를 찍을까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사람을 땅 속에 묻으면서도 하늘로 보낸다. 하늘나라로 갔다 한다. 이것은 사람의 마지막 열망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빈 꿈일까.
한때는 유목민 같은 삶을 꿈꾸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않고 소속되지 않은 간결한 삶. 머리가 복잡할 때 동네 귀퉁이에 있는 카페 Camino로 간다. 가장 쉬운 것 부터 비우러 그곳으로 간다. Camino는 스페인어로 길이라는 뜻이다.